198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김홍도(金弘道)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여러 화가들이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린 12첩 병풍이다. 순조 때의 인물로 추정되는 현부행(玄溥行)의 발의로 이이(李珥)가 은거하였던 황해도 고산의 아홉 경치를 1803년 7월과 9월에 걸쳐 여러 화원 및 문인화가들이 그렸다. 그리고 문신들이 여기에 관한 시를 적은 것을 한데 모아 표구한 것이다.
각 폭의 최상단에 유한지(兪漢芝)가 쓴 표제가 적혀 있다. 그 아래 상단부에는 이이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와 송시열(宋時烈)의 한역시(漢譯詩) 및 김수항(金壽恒)을 비롯한 서인계(西人系) 기호학파(畿湖學派) 제자들의 역화시(譯和詩)가 김조순(金祖淳) 등 안동김씨(安東金氏) 일문의 문신들에 의하여 적혀 있다. 화면의 중·하단에는 각각 고산구곡의 경관이 그려져 있고 매 폭의 여백에 김가순(金可淳)이 쓴 제시(題詩)가 있다.
병풍의 제1폭과 마지막 제12폭은 최립(崔岦)의 고산석담기(高山石潭記)와 송시열의 6대손 송환기(宋煥箕)의 발문(跋文) 등으로 이루어졌다. 고산구곡은 제2폭의 「구곡담총도(九曲潭摠圖)」와 더불어 제3폭에서 11폭 사이에 나누어 그려져 있다.
총도(摠圖)와 구곡의 각 그림은 김이혁(金履爀), 김홍도, 김득신(金得臣), 이인문(李寅文), 윤제홍(尹濟弘), 오순(吳珣), 이재로(李在魯), 문경집(文慶集), 김이승(金履承), 이의성(李義聲) 등 당대의 이름난 화원과 문인화가들이 그렸다.
실경을 직접 사생한 것이 아니라 현부행이 지니고 있던 기존의 다른 고산구곡도를 참고해 그린 것이다. 각 그림마다 이이가 동자를 데리고 소요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각 경관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인 조감법으로 조망되어 다루어졌다. 화풍은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과 남종화풍(南宗畵風)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각 작가들의 특색과 기량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 초반에 활약하였던 이름난 화원과 문인화가들의 개성과 역량을 비교하여 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의 전개 양상과 더불어 이이와 송시열계 기호학파 학자들의 인적 계보와 성향을 추구하는 데도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