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순평(順平).
1393년(태조 2)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태종 초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가례(家禮)』를 준수한 일과 어머니에의 효행으로 사간원의 천거를 받아 공안부주부(恭安府注簿)에 제수되었다.
1418년(태종 18) 형조정랑으로 있을 때 무녀(巫女) 치죄에 대한 잘못으로 외방에 부처(付處), 세종 초에 복직되었다. 그뒤 장령 · 경창부소윤(慶昌府少尹)을 거쳐 예조참의 · 이조참의 · 충청도관찰사 · 한성부윤 · 형조참판 · 대사헌을 지냈다.
1434년(세종 16) 장령 민신(閔伸)과의 상핵사건(相劾事件)으로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황주목사 · 인수부윤(仁壽府尹) · 형조참판을 지냈다. 1442년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