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지석묘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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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전경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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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탁자형, 바둑판형, 지상석곽형 등이 혼재된 고인돌군. 지석묘군.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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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탁자형, 바둑판형, 지상석곽형 등이 혼재된 고인돌군. 지석묘군. 사적.
개설

고창 지석묘군은 1994년 9월 27일에 1994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동서 방향 약 1.8㎞ 범위에 걸쳐 442기, 도산리의 5기 등 총 447기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내용

죽림리지석묘는 해발 15∼65m의 등고선을 따라 일정한 높이에 열 지어 놓여 있다. 지석묘 앞에 고창천을 끼고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은 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살기 좋은 자연 조건을 갖춘 이 지역에는 규모가 매우 큰 집단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강 건너 마을 도산리에도 고인돌이 5기가 남아 있다.

죽림리 및 상갑리 일대에서는 1965년국립박물관에 의해 3기의 지석묘가 발굴 조사된 바 있으며, 1990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와 원광대학교가 3개월에 걸친 현지조사를 통해 441기의 지석묘를 확인하였다. 파괴 · 매몰된 108기를 합하면 이 일대에서 모두 550여기의 지석묘가 확인되었다. 그라나 조사이전에 파괴된 지석묘의 수를 고려하면, 1,000여기의 지석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는 탁자형과 바둑판형, 그리고 그 중간 과도기적인 지상석곽형(地上石槨形) 등 다양한 지석묘의 형식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크기는 뚜껑돌〔蓋石〕의 길이가 4m 이상인 것이 21기이며, 가장 큰 제2404호는 길이 5.8m, 너비 5.0m, 높이 2.0m에 이른다. 대부분이 바둑판형이지만 탁자형도 2기, 지상석곽형 44기가 있다.

발굴조사는 분포지역 중앙의 안부로 뻗은 Ⅱ-3군의 남북으로 배열된 17기를 대상으로 하였다. 발굴된 지석묘군은 대략 남북 2열로 배치되어 세 가지의 형식으로 분류된다.

① 지상에 석곽이 노출되어 북방식처럼 보이나, 측벽석은 2매 이상의 판석으로 짜여 있어 지석을 괴지 않고 벽석 자체만으로 개석을 받치고 있는 것, ② 지상에 석곽이 노출된 점은 ①과 같으나, 다만 개석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2∼4개의 보조지석을 앞뒤 또는 측면에 괸 것, ③ 판석으로 된 석곽을 짰으나 둘레에 돌을 쌓아 이 돌무지가 개석의 무게를 부담하고 석곽을 보호하고 있는 것 등이다.

이들 지상석곽형은 지석이 없는 경우 개석의 길이는 1.6∼2.7m 미만이고 두께도 50∼60cm 정도인데 비해, 보조지석을 괸 부류는 길이 2.7∼3.2m, 두께 80∼90cm로 불어나서 대형화 경향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발굴분의 유형 외에 전형적인 남방식으로 전이된 지석묘의 모습을 바로 아래쪽에 있는 제2308호 지석묘에서 볼 수 있다. 이 지석묘는 지상 높이 30cm 이상으로 4개의 지석을 괴었으나 내부에는 퇴화된 석곽의 벽석 흔적이 남아 있다. 개석도 길이 4.0m, 너비 1.85m, 두께 1.24m로 대형화되어 있다.

고창군에 분포하는 지석묘의 총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나 1984년(전북대), 1987년(전북대), 1990년(원광대) 조사를 통해 85개소 이상에서 2,000여기 이상의 지석묘가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근 이웃한 대산면 상금리 일대에서 200여기 이상의 남방식 지석묘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지석묘가 가장 밀집하여 분포하는 지역은 고창군이며, 고창군내에서는 죽림리 · 상갑리 일대에 지석묘가 가장 밀집되어 있다. 이와 같이 지석묘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하나의 특수한 지역을 이루는 것은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에서 보이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그 숫자의 방대함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 이른바 북방식이라 불리우는 탁자식, 남방식인 바둑판식, 여러 매의 벽석이 지상에 노출된 개석식(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일대는 우리나라 지석묘의 기원 및 성격 뿐만 아니라 지석묘가 북방식에서 남방식, 개석식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의 지석묘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죽림리 · 상갑리 일대의 지석묘 유적은 그 분포 규모와 숫자에 있어서 동양 거석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채석장도 보이지만 무덤방 안에서 부장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고창고인돌」(최몽룡, 『한국 지석묘(고인돌)유적 종합조사·연구』, 문화재청·서울대박물관, 1999)
『고창죽림리일대지석묘군지표조사보고서(高敞竹林里一帶支石墓群地表調査報告書)』(전영래, 원광대학교박물관, 1992)
『고창죽림리지석묘발굴약보고(高敞竹林里支石墓發掘略報告)』(전영래, 원광대학교, 1991)
「한반도(韓半島) 지석묘형식학적전개(支石墓型式學的展開)」(전영래, 『구주고고학(九州考古學)』66, 구주대학(九州大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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