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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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말기 비변사가 의정부에 병합된 뒤 의정부 내의 비변사 업무를 담당한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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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말기 비변사가 의정부에 병합된 뒤 의정부 내의 비변사 업무를 담당한 관서.
내용

1865년(고종 2) 비변사가 폐지되어 의정부에 통합된 뒤에도 그 조직과 인원 및 기능은 의정부 내에 그대로 존속되어 공사색으로 칭하였다.

비변사의 도제조는 도상(都相)이라 개칭하여 전임 의정이 겸하게 하였고, 제조는 당상으로 개칭하여 공조판서 외의 5판서, 5군영대장, 수원·광주·개성유수, 대제학, 좌우포도대장 등이 당연직으로 겸하였으며, 또 유사당상 4인, 공시당상(貢市堂上) 2인, 8도 구관당상 8인 등을 임명하여, 한때 그 인원이 49인에 이르기도 하였다.

실무 낭청들은 공사관으로 개칭하였는데, 문관 2인, 무관 참상 5인, 참하 4인으로 모두 11인이었다. 공사색에서는 비변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모든 중요정책을 심의, 운영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대전회통(大典會通)』
『육전조례(六典條例)』
「기구상(機構上)의 변개(變改)」(이현종, 『한국사』13, 국사편찬위원회, 1978)
집필자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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