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송산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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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공주송산리고분군 동면 전경
공주송산리고분군 동면 전경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公州 武寧王陵과 王陵園)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벽돌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공주시 중심지에서 서북방으로 약 1㎞ 정도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옛부터 ‘송산소(宋山所)’라고 불리어 오던 곳이다. 이곳의 지형은 금강과 연접하고 있는 곳으로서 북쪽이 막혀 있고 남쪽이 트여있는 구릉지역이다. 이 구릉의 남쪽으로는 계속되는 낮은 구릉이 전개되고 있다. 정상에 올라보면 동으로 풍광이 우수한 계룡산이 보이고 서남으로는 금강이 휘감고 돌아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고분들은 동남향의 8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대체적으로 표고 75m 정도이다. 현재 확인되고 있는 고분은 벽돌무덤(塼築墳)인 무령왕릉과 6호분이 있고, 이외에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인 1∼5호분이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수십 기의 고분들이 위치하고 있다. 송산리 고분군의 고분 배치는 구릉의 윗부분에 1∼4호분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으며, 그 남쪽 사면에 무령왕릉과 5호분 그리고 6호분이 또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5호분, 6호분, 무령왕릉의 배열은 무령왕릉이 최북단에 있고 이곳으로부터 남으로 6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5호분은 6호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들 3기의 배치는 삼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돌방무덤인 1∼4호분은 앞의 고분들에서 20∼30m의 거리를 두고 동에서 서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이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비교적 일찍부터 조사가 진행되었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1∼5호분의 돌방무덤을 비롯하여 주변의 돌방무덤들이 이미 1927년에 조사된 바 있다. 그리고 1933년에는 벽돌무덤이 조사되었지만 이들에 대한 조사는 약간의 기록만 전해지고 있어 그간의 실정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현재 백제시기의 고분 7기가 전시되고 있다. 이중에는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릉이 포함되어 있고, 1985년부터는 무령왕릉의 모형전시관도 마련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송산리 고분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들의 주인공에 대하여는 처녀분으로 지석(誌石)이 출토된 무령왕릉을 제외하고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단지 6호분이 성왕릉이 아닐까하는 추정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내부가 공개되어 있는 5호분은 깬돌(割石)로 4벽을 구축하였는데 바닥으로부터 약 1m 정도는 수직으로 쌓고 그 위부터는 약 25˚정도 안으로 좁히면서 맞조여 쌓아 올림으로써 활(穹隆狀)천장을 이루었으며, 정상에는 1매의 대판석을 덮고 있다. 또한 널길(羨道)은 남벽에 설치하였는데 남벽의 동쪽에 치우치게, 즉 동측의 장벽에 잇대어지게 하고 있다. 이 5호분의 내부 돌방은 깬돌로 쌓아진 형태로 남아 있으나 본래는 벽면에 두껍게 진흙을 발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직 미공개인 4호분이 벽면에 두껍게 진흙이 발라져 있어 이들 돌방무덤의 널방(玄室) 대부분이 이처럼 흙을 발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송산리 고분군 내에는 무령왕릉 및 6호분의 벽돌무덤과 1∼5호분의 돌방무덤 등 대외적으로 공개되거나 정비된 고분 이외에 이미 조사가 이루어져 이들에 대한 조사의 내용만이 전하는 고분들이 다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1927년에서 1932년 사이에 조사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조사는 본격적인 학술조사라기보다는 외형 및 내부의 구조파악과 유물의 수습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 그 고분들의 유형 및 형태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이 전하고 있을 따름이다. 더불어 고분군의 대체적인 윤곽만이 확인되고 있을 따름이다. 현재 당시 조사되었던 고분들은 모두 외형이 감추어져 있어 이들 고분들의 실체들을 확인하려면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1930년대에 조사된 고분들은 대략 20여 기로 추정되는데 위에서 언급하였던 1∼5호분의 돌방무덤과 6호분의 벽돌무덤 이외의 나머지는 모두 석축에 의한 것들이었다. 유형별로 보면 활천장돌방무덤 외에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墳)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들은 대부분 무령왕릉을 위로하여 주변에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고분들은 공주의 송산리 지역에서 확인 혹은 조사된 고분들이나, 이외 송산리 일대에는 미확인된 고분이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백제고분연구(百濟古墳硏究)』(강인구, 일지사(一志社), 1977)
『충남지역(忠南地域)의 문화유적(文化遺蹟)』(백제문화개발연구원(百濟文化開發硏究院), 1977)
「무녕왕릉(武寧王陵) 및 송산리육호분(宋山里六號墳)의 전축구조(塼築構造)에 관한 고찰(考察)」(윤무병, 『백제연구(百濟硏究)』5, 1974)
「백제고분(百濟古墳)의 연구(硏究)」(안승주, 『백제문화(百濟文化)』2, 1968)
『百濟美術』(輕部慈恩, 寶雲舍, 1946)
「公州宋山里古墳調査報告」(朝鮮總督府, 『昭和二年度古蹟調査報告』 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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