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왕 때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의 할아버지이다. 이차돈의 가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이차돈의 사적에 대하여 『삼국사기』에서는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에 의거하여 기술하였고, 『삼국유사』에서는 남간사사문(南澗寺沙門) 일념(一念)이 찬한 「촉향분예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에 의거하여 기술하였는데, 각주(脚註)에는 김용행(金用行) 이 지은 「아도비(阿道碑)」와 기타 향전(鄕傳) 등이 인용되고 있다.
김용행이 지은 「아도비」에서 “사인(舍人, 이차돈)의 그때 나이 26세요, 아버지는 길승(吉升), 할아버지는 공한(功漢), 증조부는 걸해대왕(乞解大王, 訖解尼師今)이다. ”라고 하였다.
결사문에서는 “아버지는 미상이고 할아버지는 아진종(阿珍宗)이니, 곧 습보갈문왕(習寶葛文王)의 아들로, 성은 박씨(朴氏)이고 자는 염촉(厭髑)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상의 기록에서 공한의 아버지를 흘해이사금이라고 하면, 흘해이사금은 석씨(昔氏)출신의 왕이니, 공한과 그 손자 이차돈도 석씨가 된다.
그러나 결사문의 기록대로 아진종이 습보갈문왕의 아들이라면 습보갈문왕은 내물마립간의의 손자요 지증왕의 아버지이므로 마땅히 김씨(金氏)인데, 박씨라고 하였다. 이처럼 공한과 이차돈의 가계는 기록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