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산 관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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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관음사 중 원통전 정면
곡성 관음사 중 원통전 정면
불교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성덕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처녀 성덕이 창건한 사찰.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관음사(觀音寺)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1984년 02월 29일 지정)
소재지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관음길 453 (선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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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성덕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처녀 성덕이 창건한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300년(분서왕 3) 처녀 성덕(聖德)이 낙안포에서 금동관세음보살상을 모셔다가 창건하였다.

「성덕산관음사사적」에 의하면, 옛날 충청도 대흥 땅에 장님 원량(元良)이 살았다. 그에게 홍장(洪莊)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수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마을 어귀를 지나다가 승려 성공(性空)을 만났는데, 그가 장님 원량에게 큰절을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간밤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오늘 마을에서 장님을 만날 텐데 그가 대화주(大化主)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원량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설명하였으나 승려는 한사코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부녀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데, 저녁 무렵 진나라 사신이 찾아왔다. 사신이 말하기를, 진나라 혜제(惠帝)가 새 황후 될 분이 동국(東國)에 있을 것이니 가보라고 하여 배를 타고 포구에 이르렀는데,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 집으로 인도되었다고 하였다.

부녀는 진나라 사신의 예물을 받았으며, 그 예물을 성공에게 시주하여 절을 짓도록 하였다. 창건 후, 성공은 관음보살상을 만들어 모시고 절 이름을 성덕산 관음사라 하였다.

그 뒤 1374년(공민왕 23) 크게 절을 일으키고 원통전(圓通殿)을 중건하였으며, 선원을 중심으로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6·25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954년 주지 박창훈(朴昌薰)이 부근의 대은암(大隱庵) 건물을 옮겨와서 원통전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 및 2층의 금랑각(錦浪閣)과 산신각 · 요사채 등 7동이 있다. 6·25전쟁 전까지 이 절의 원통전과 금동관음보살좌상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전란 중에 모두 소실되었다. 도량 전체가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내 고장 전통 가꾸기』(곡성군, 1981)
『한국사찰전서』상(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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