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누정으로 정면 3칸(9.45m), 측면 2칸(6.1m)의 익공식(翼工式) 합각지붕건물이다. 둘레에는 10개의 긴 기둥을 세워 1·2층 기둥을 겸하게 하였고, 가운데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앞면 가운데를 시원하게 터놓았는데, 이것은 북한 누정건물에서 흔히 쓰던 기법 중의 하나이다. 두공(枓供)은 간소한 초익공(初翼工) 두공이며, 합각지붕을 이룬 용마루·박공마루·추녀마루의 선들과 지붕면들은 완만하게 휘어졌다. 마루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굵은 대창·소창을 건너대고 거기에 널빤지를 깔았다.
원래 괘궁정은 혜산진성(惠山鎭城)의 남문의 문루였는데 1937년 이곳에 옮겨 세웠다. 혜산진성은 조선 초기에 쌓은 보성을 1421년(세종 3)에 고쳐쌓고 진을 설치한 뒤 조선 말기까지 진성으로 이용하였다. 성의 남문은 처음에는 북융대(北戎臺)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북으로부터 빈번히 침입하던 여진족을 제압하여 복속시킨다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이 북융대를 1631년(인조 9)에 다시 지으면서 괘궁정이라 이름하였는데, 이곳에 주둔한 군인들이 누각에 활을 걸어놓고 감시하다가 침입해오는 외적을 막았다는 뜻에서 연유한 것이다. 혜산진성과 함께 옛날 우리나라 북방 방비의 중요한 초소로서 큰 구실을 한 의의깊은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