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관’ 또는 ‘학관’이라고도 불렸다. 삼국시대의 태학이나 국학의 교관으로는 박사(博士)가 있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조교(助敎)·사업(司業)·주부(主簿) 등의 직이 더 설치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의 국자감에는 사업·박사·조교·좨주(祭酒)·승(丞)·주부·학정(學正)·학록(學錄)·학유(學諭)·직학(直學) 등의 교관이 설치되어 있었고, 지방의 향학에는 문사(文師)·문학(文學)·교수관이라는 이름의 교관이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의 성균관에는 대사성(大司成, 정3품, 1인) 아래에 사성(司成, 종3품, 2인)·사예(司藝, 정4품, 3인)·직강(直講, 정5품, 4인)·전적(典籍, 정6품, 13인)·박사(정7품, 3인)·학정(學正, 정8품, 3인)·학록(정9품, 3인)·학유(종9품, 3인) 등의 교관이 있었고, 사부학당에는 교수(종6품)·훈도(정9품) 등을 설치하였는데, 성균관의 전적 이하 관원이 겸임하도록 하였다.
왕족의 교육을 위한 특수학교인 종학(宗學)에는 도선(導善, 정4품, 1인)·전훈(典訓, 정5품, 1인)·사회(司誨, 2인) 등의 교관이 설치되었는데, 역시 성균관 전적 이상의 관원이 겸직하였다.
그 밖에 율학(律學)·산학(算學)·천문지리학·의학·외국어 등의 교육을 위한 잡학은 각기 해당관청에서 운영하고 있었던바, 여기에는 각 학의 교수·훈도 등이 설치되어 전문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의 지방학교였던 향교의 교관으로는 도호부 이상은 교수(유학교수), 그 이하에는 훈도가 파견되었다. 교수는 문과 출신, 훈도는 생원·진사로서 임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문관들이 교수직을 기피하였으므로 문과복시에 여러 번 낙방한 사람이나, 생원·진사로서 교수직에 임명하여 교도(敎導)라 칭하였다.
때로는 지방관으로 하여금 현지에서 교관을 채용하게 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학장(學長)이라 하였다. 또 지방에서의 통역관 양성을 위해서 역학교수·역학훈도를 두기도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향교교육이 유명무실화되면서 교수·훈도의 파견도 폐지되었고, 그 대신 교양관(敎養官)이라는 비정규적인 교관이 수시로 파견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내시부(內侍府)에 내시교관(종9품, 2인), 사부학당에 동몽교관(종9품, 4인)이 비정규직인 권설직(權設職)으로 설치되었는데, 이들을 통칭 교관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