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년(인종 5)에 처음으로 각 주의 향학에 2인씩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 문종 때 최충(崔冲)이 설립한 사학(私學)과 예종 때의 국학(國學)에서도 이러한 직책이 설치된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도호부 이상의 부·목의 향교에는 교수관(종6품, 통칭 교수)을, 군·현의 향교에는 훈도관(訓導官, 종9품, 통칭 훈도)을 파견하였으나 문관들이 이를 기피하였으므로, 진사·생원들 가운데에서 선임하여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을 교도라 지칭하였다.
그러나 지방의 학관은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대우가 나쁘고, 향리들이나 학생들로부터 멸시당하기 일쑤였으므로, 진사·생원들도 부임하기를 꺼렸다.
교도의 확보마저 어려워지게 되자, 지방관리들이 현지에서 학관을 채용하게 되었는데, 이를 학장(學長)이라 칭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교수·훈도·교도의 파견이 폐지되고, 향교의 교육도 유명무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