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박씨(朴氏). 호는 묘응(妙應), 자는 응물(應物). 평양 출생.
9세에 출가하여 장경사(長慶寺)석찬(釋贊)의 제자가 되었고, 1089년(선종 6)불일사(佛日寺)에서 비구계(比丘戒)를 받았다. 석찬이 죽은 뒤 쌍봉사(雙峰寺)의 익종(翼宗)을 스승으로 섬겼다.
그때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처음으로 천태종을 일으켜 교관(敎觀)을 선양할 때 스승 익종과 함께 국청사(國淸寺) 대각국사의 강석(講席)에서 천태의 종지(宗旨)를 배우고 명성을 떨쳤다. 1109년(예종 4) 대각국사가 주맹(主盟)이 되어 나라에서 처음으로 천태종 대선(大選)을 열었을 때, 이에 응시하여 상상품(上上品)에 올라 대덕(大德)이 되었다.
그뒤 국청사에서 복강사(覆講師)로서 경론을 강의하여 학인들을 가르쳤고, 천태의 종풍(宗風)을 드날리다가 수년 뒤 홍주(洪州)의 백암사(白嵒寺)로 갔다. 그때 어떤 사람의 시기를 받아 귀양간 것이라고도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그곳에서 7년 동안 머물면서 천태학(天台學)뿐만 아니라 화엄학·유가학(瑜伽學)·유학·노장학·의학·음양설에 이르기까지 깊이 연구함으로써 그 수행과 학덕이 더욱 높아졌다.
예종 때에는 삼중대사(三重大師)·선사가 되었고, 인종 때에는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67세로 입적하였다. 문하에는 덕소(德素)를 비롯하여 134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