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년(문무왕 1)에 당나라 고종(高宗)이 소정방(蘇定方)을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할 때 문무왕에게 군량을 평양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662년 1월 문무왕은 김유신(金庾信)에게 명하여 군량을 수송하도록 하였으나, 바람과 눈이 심하고 고구려군의 저항이 격심하여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에 보기감(步騎監) 열기(裂起)와 군사(軍師) 구근 등 15명의 장사(壯士)가 이러한 사실을 당나라의 병영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김유신은 그들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서 열기와 구근을 ‘천하의 용사’라 하고 문무왕에게 청하여 사찬(沙飡)의 관등을 주도록 했다.
그는 뒷날 원정공(元貞公 : 김유신의 셋째아들)을 따라 서원술성(西原述城)을 쌓았는데, 원정공이 남의 말을 듣고 그가 일을 태만히 한다고 하여 곤장을 때렸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열기와 함께 생명을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곳에 들어가서도 대각간(大角干) 김유신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며, 대각간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고 국사(國士)로 대우하였다.
그런데 지금 뜬말만 듣고 나를 죄주니 평생에 욕됨이 이것보다 큼이 없다.”고 하였다. 원정공이 이 말을 듣고 종신토록 부끄러워하고 뉘우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