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징 ()

경타재문집
경타재문집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경타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대현(大見)
경타재(警惰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8년(효종 9)
사망 연도
1715년(숙종 41)
본관
능성(綾城)
출생지
무태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경타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대현(大見), 호는 경타재(警惰齋). 무태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구시웅(具時雄)이며, 어머니는 옥천전씨(沃川全氏) 진사 전유익(全有翼)의 딸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재지(才智)가 뛰어나고 재예가 있어 12세에 이미 시부를 지었고, 16세에는 복시에 출제되는 시제(詩題)로 배율(排律) 20운(韻)을 지어 주위로부터 천재라 일컬어졌다. 이어 대소향시(大小鄕試)에 16번이나 합격했으나 결국 대과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그 뒤로부터 과제발신이 본의 아님을 깨닫고 이황(李滉)의 언행록을 탐독,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였다. 1683년(숙종 9)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상을 당하여 곡반(哭班)에 참여했고, 집에 단을 설치하여 삭망(朔望)으로 망곡례(望哭禮: 곡을 할 자리에 가지 못하고 그쪽을 향하여 애곡하는 것)를 행하였다.

1689년 남인들의 무함(誣陷)으로 이이(李珥)·성혼(成渾)이 출향(黜享: 문묘 배향을 거두어 치움)되었는데, 1694년 정국이 다시 반전되자 기호유생의 소수(疏首)가 되어 복향(復享)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려 성사시켰다.

그리고 또 김장생(金長生)의 문묘배향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저술이 많았으나 중간에 불타버리고 남은 문적을 모아 엮은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 4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경타재문집(警惰齋文集)』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이민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