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상중(常中), 호는 모정(茅亭). 안동부사 구성량(具成亮)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구수팽(具壽彭)이다. 임진왜란 때 금산 칠백의사(七百義士) 중의 한 사람이다.
일찍이 조헌(趙憲)과 친교를 맺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같이 의병을 모아 왜적에 대항하였다. 청주싸움에서는 병기와 군량을 조달하여 승전하게 한 공으로 왕의 특명에 의해 절충장군(折衝將軍) 위계에 올랐다.
8월에 조헌·영규(靈圭) 등 칠백의사와 함께 금산에서 왜군의 대부대를 만나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뒤에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증손인 구봉서(具鳳瑞)가 실기(實記)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