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國立劇團)은 국립극장(國立劇場)과 함께 설치된 국내 유일의 국립 연극단체이다. 국립극장은 처음 1949년 국립극장 설치령으로 1950년 1월 부민관(府民館)을 인수하고 그 전속극단으로 극협(劇協)과 신극협의회(新劇協議會: 약칭 新協)을 두었다. 이후 극협이 유명무실해지고 신협으로 흡수되면서 국립극단은 극단 신협과 동일시되어 활동하였다. 국립극장의 초대 극장장은 유치진(柳致眞)이었고, 신협은 이광래(李光來)를 간사장으로 하여, 이해랑(李海浪)·김동원(金東園)·박상익(朴商翊)·주선태(朱善泰)·오사량(吳史良)·박제행(朴齊行)·박경수·최삼·전두영 등 남자배우 10명과 김선영(金鮮英)·유계선(劉桂仙)·황정순(黃貞順)·유해초 등의 여배우들이 전속으로 활동했다.
1950년 4월 29일에 개관된 국립극장은 30일부터 일주일간 유치진 작「원술랑(元述郞)」으로 창립공연을 올렸고, 6월 초에 조우(曹禺) 작「뇌우(雷雨)」로 제 2회 공연을 가졌는데 이들 공연은 모두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제3회 공연 준비 중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신협은 피난지 부산과 대구를 중심으로 별도로 활동함으로써 민간 연극단체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때문에 피난지 대구에서 재개관한 국립극장은 전속극단 없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환도 후인 1957년 6월에 서울 시공관 건물을 국립극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신협을 전속으로 하고, 변기종(卞基鍾) 등 중견배우들을 영입하여 새롭게 국립극단을 탄생시켰다. 이 후 국립극단은 여전히 신협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벌이다가 1958년에 기존 신협 단원들이 대거 탈퇴함으로써 그 활동이 약화되었다. 더구나 1959년에는 적자운영이 문제가 되어 국립극장 존폐문제가 거론되는 가운데, 전속극단인 민극(民劇:단장은 박진)이 조직됨으로써 두개의 전속극단이 공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 국립극장이 공보부로 이관되면서 서울 명동 시공관(市公館)을 전용극장으로 갖게 되었고, 1962년 1월에는 신협과 민극을 통합하여 국립극단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출범하였다. 박진(朴珍)을 단장으로 한 이 국립극단은 과거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계열과 동양극장(東洋劇場)계열의 통합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국립극단은 1973년에 국립극장이 장충동에 신축되어 옮겨간 뒤 더욱 확대·발전되었다.
재발족한 뒤 꾸준히 신작을 발굴해 온 국립극단은 제1회 공연으로 이용찬(李容燦) 작「젊음의 찬가」를 시작으로 번역극과 창작극 등을 무대에 올렸다.
1962년 12월에 공연한 차범석(車凡錫) 작·이진순(李眞淳) 연출「산불」은 이 극단의 대표적 공연이 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3년에는 단막극 시리즈를 주최하였고, 장막극을 공모하여 1964년 천승세(千勝世) 작「만선(滿船)」, 1965년 이재현(李載賢) 작「바꼬지」, 1967년 윤조병(尹朝炳) 작「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 오태석(吳泰錫) 작「환절기」등을 공연하였다.
1973년 장충동에 신축된 국립극장으로 옮겨간 뒤에는 이재현 작「성웅 이순신」을 비롯해서, 김의경(金義卿) 작「남한산성」, 차범석 작「활화산」, 노경식(盧炅植) 작「징비록(懲毖錄)」 등 목적성을 띤 시대극을 주로 공연하였다. 그러나 이 극단은 극작가 발굴작업과 관립(官立)이라는 지나친 의식, 그리고 공연작품 선정의 무계획성·비일관성 등으로 인하여 점차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창작극의 선택을 폭 넓게 하고 소극장 중심으로 한 공연체제로 바꾸는 동시에 오태석 등 중견작가의 신작과 외국의 현대물들을 무대에 올려 관객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국립극단은 일반 극단이 시도하기 어려운 대작과 세계적인 고전을 주로 소개하며, 1991년부터 우수창작극 공모제를 실시하는 등 창작극과 마당극의 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지방순회공연과 여름연극캠프, 중·고교 교사를 위한 연극지도교사연수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근래에는 예학협동프로그램인 ‘신작희곡페스티벌’을 연극원과 함께 개최하였다.
2004년부터는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 복원 및 재창조 시리즈’를 기획하여「뇌우」·「인생차압」·「산불」·「물보라」·「베니스의 상인」·「맹진사댁 경사」등을 공연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넋씨」·「사로잡힌 영혼」·「물거품」·「홍동지는 살어있다」·「피고지고 피고지고」·「이성계의 부동산」·「맹진사댁 경사」·「불」·「귀로」·「푸른 무덤의 숨결」 등의 창작극과,「빌헬름 텔」·「죄와 벌」·「베니스의 상인」·「파우스트」·「오이디푸스왕」·「노부인의 방문」·「리처드 3세」등의 세계고전극 외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한편 이 극단은 일반 연극계와의 교류도 꾸준히 지속하였다. 1986년 이강백(李康白) 작·李昇珪(이승규) 연출「비옹사옹」이 제10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한 이래「꿈하늘」은 1987년 제11회 서울연극제 축하공연으로, 「팔곡병풍」 1988년 제12회 서울국제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태평천하」는 1989년 제13회 서울연극제 초청공연작으로, 「춘향아, 춘향아」는 1996년 제20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극단은「포로들」로 1972년 제9회 백상예술대상의 대상과 작품상을, 「남한산성」으로 1974년 제11회 백상예술대상의 대상과 작품상을, 「사로잡힌 영혼」으로 1991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대상과 작품상을, 「마르고 닳도록」으로 2000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국립극단의 성격이 처음에는 애매모호한 부분도 있었지만, 우리의 전통극을 보존·전승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된다. 또한 명작극장시리즈의 공연 및 신진 극작가 발굴작업, 대극장·소극장의 공연회수를 늘리는 등 공연활동을 크게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