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4·19민주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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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4.19 민주묘지
국립 4.19 민주묘지
정치
지명
4·19혁명의 사망자 · 부상자 · 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이칭
이칭
국립4·19묘지, 국립사일구묘지
정의
4·19혁명의 사망자 · 부상자 · 공로자를 안장한 국립묘지.
개설

1960년 2월 이후 이승만정권의 부정부패와 3·15부정선거에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희생 혹은 부상당하였거나 공로가 인정되어 포상을 받은 인물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한천로 180길 17(수유4동 산 9-1)의 북한산(삼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2018년 10월 5일 현재 안장자는 413기이고, 잔여 안장자는 172기이다.

형성 및 변천

1961년 2월 1일 국무회의에서 공원묘지 설립을 의결하여, 1962년 12월 21일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 하에 기공식을 갖고, 1963년 9월 20일 9,917㎡ 면적으로 준공되었다. 묘지와 함께 기념탑이 제막되고, 같은 해 12월 3일 서울특별시에 기부되었다. 1993년 4월 19일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어 총 예산 150억 원이 투입되었다. 이때 면적이 42,975㎡에서 135,537㎡로 대폭 확장었다. 같은 해 10월 20일 성역화 사업이 착공되고, 4·19혁명 35주년을 앞둔 1995년 4월 17일 준공됨과 동시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같은 해 4월 18일 국가보훈처로 관리가 이관되었고, 2006년 1월 30일 법률 제7649호에 따라 ‘국립4·19묘지’에서 ‘국립4·19민주묘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현황

2018년 10월 5일 현재 안장자는 413기이고, 잔여 안장자는 172기이다. 총 면적은 96,837㎡로, 성역공간·이용공간·산림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역공간은 면적이 29,405㎡로 묘역·참배로·유영봉안소·기념관이 있고, 이용공간은 면적이 7,845㎡로 다목적 광장·연못· 주차장이 있으며, 산림공간은 면적이 59,587㎡이다. 기념탑은 묘지 한 가운데에 위치하는데, 4·19혁명의 기상을 상징하는 7척 높이의 탑주 일곱 개가 우뚝 솟아 있다. 설계·조각은 김경승(金景承), 탑문은 이은상(李殷相), 글씨는 김충현(金忠顯)이 맡았다. 주위에는 수호신상과 함께 각도를 달리하는 20개의 만장이 미술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서울육백년사』5(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3)
『보훈 50년사, 1961∼2011』(국가보훈처, 2011)
『서울육백년사』5(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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