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936년 충청남도 부여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에서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과 함께 출토되었다.
머리에는 삼산형(三山形)의 보관을 썼고, 얼굴 좌우로 두꺼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약간 넓적한 편이지만 볼을 팽팽하게 처리하여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눈은 아래를 향하여 반쯤 뜨고 있고 입술의 끝단을 살짝 올려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위로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으나 손가락 2개를 구부렸으며, 왼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 손등을 앞으로 한 채 엄지와 검지로써 지물(持物)을 잡은 듯한 모습이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지 않았고, 가슴에는 V자형 장식이 첨가되었다. 배 앞에서 X자형으로 교차된 천의(天衣)는 어깨에서 다시 좌우대칭으로 길게 늘어져 지느러미같이 묘사되었는데, 그 끝단을 날카롭게 처리하였다. 천의 안으로 U자형 주름이 발목까지 흘러내리고 발목 사이로는 또 하나의 옷주름이 보이고 있다.
이 보살상은 양발 사이에 공간을 형성한 점이 특이하고, 측면에서 보면 배를 앞으로 내밀어 양발을 당긴 듯한 모습이다. 또한 두 발은 가지런히 모은 것이 아니라 한 쪽 발을 틀어 변화를 주었다. 발 아래로는 잎이 넓은 연화좌가 표현되었는데, 이 연화좌는 원오리 출토(元吾里出土) 소조보살상과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옷주름이 두꺼우면서도 부분적으로 신체의 굴곡이 표현된 점과, 얼굴의 부드럽고 생동감 있는 처리는 고구려의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국보, 1964년 지정)이나 원오리 소조상보다 훨씬 진전된 형식을 보여준다.
넓은 얼굴의 풍만한 미소는 같은 사지에서 출토된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에서도 볼 수 있다. 이 풍만한 미소는 이후의 백제 불상에서 즐겨 표현된다. 6세기 중엽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보살상 중 그 출토지가 분명하고 조각 기술이 돋보이는 귀중한 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