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조선시대 가마터). 1990년 명지대학교박물관과 호암미술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고분군은 구릉의 정상부와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장축방향은 남북이고 경사면을 따라 서로 장축상으로 열(列)을 이루며 분포한다.
고분의 내부구조형식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墳] 8기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1기가 혼재하고 있다. 무덤 외곽에 직경 7.8m의 둘레돌[護石]이 원형(圓形)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미루어 본래는 원형 분구(圓形墳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돌덧널무덤은 평면형이 장방형이다. 주검받침[屍床臺]은 바닥 전면(全面)에 설치하거나 한쪽 면에 치우쳐 시설한다. 주검받침의 북쪽에서 부장품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머리방향은 북침(北枕)으로 본다.
돌방무덤은 평면형이 방형(方形)이다. 남벽에는 널문(羨道)을 마련하였다. 바닥에는 동쪽으로 치우쳐 2개의 주검받침을 납작한 작은 돌을 사용해 길게 장방형으로 한 벌 깔아 만들었다.
이 무덤은 구조상 널문과 2개의 주검받침을 지닌 것으로 보아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머리방향은 북침으로 본다. 출토유물로는 인화문(印花文)이 시문된 토기류와 청동제허리띠장식[銙帶裝飾-銙板] 등이 있다.
고분군의 편년은 구조나 유물의 출토상으로 보아 삼국통일기의 신라고분으로 보인다. 이는 신라의 영역확장과 관련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도요지는 조선시대 전기(15세기 말∼16세기 전반경)의 백자요지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산 구릉 자연 경사를 이용해 중턱에서 위쪽으로 사용했다가 폐기하였다. 다시 전(前) 가마와 거의 맞닿을 정도로 인접하나 직각으로 틀어 구릉의 왼쪽 사면을 이용해 위쪽으로 가마를 축조해 사용하였다.
가마는 반지하식(半地下式)으로 파서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모래를 깐 다음 진흙개떡을 정연하게 계단식으로 배치하였으며, 양벽을 진흙으로 올려 쌓아 만든 등요(登窯)형식의 칸가마이다.
출토유물로는 백자의 접시류, 화형발(花形鉢), 전접시 등과 청자 · 분청자 · 흑유자 · 토기 · 옹기 등이 망라되어 있어 당시의 전반적인 요업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이 도요지는 조선 전기의 지방가마와 백자의 변천과정 연구에 귀중한 유적이며,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