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정교, 전리, 경의원 참의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이칭
아현(亞峴)
이칭
권명준(權明俊)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2년(고종 9)
사망 연도
1948년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함경북도 성진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정교, 전리, 경의원 참의 등을 역임한 대종교인.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권명준(權明俊), 호는 아현(亞峴). 함경북도 성진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5년 1월에 참교(參敎)의 교질(敎秩:대종교의 교계)을 받은 뒤 1921년 10월에 지교(知敎), 1924년 3월에 상교(尙敎)가 되었다.

그 뒤 정교(正敎)에 이르렀고, 대형(大兄)의 교호(敎號: 대종교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호칭)를 받았으며, 총본사(總本司) 전리실(典理室)의 책임자인 전리와 경의원(經議院)의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1942년 11월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하여 교주를 포함한 간부 25명을 체포하여 그 가운데 10명을 고문 또는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하게 하고, 교주 윤세복을 무기형에 처하는 등 7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건인 임오교변(壬午敎變) 때 일본경찰에 잡혔다.

영안현(寧安縣) 경무과, 목단강성(牧丹江省) 경무청과 고등검찰청 등 세 곳을 거치면서 11개월간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하여 이 때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43년 10월 고령을 이유로 면소되어 출옥하였다.

참고문헌

『일제하독립운동사연구―만주노령지역을 중심으로―』(박영석, 일조각, 1984)
『독립운동사』 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대종교중광육십년사』(대종교총본사, 1971)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집필자
강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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