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우(士遇), 호는 묵암(默菴). 권효량(權孝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상(權詳)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권희맹(權希孟)이며, 어머니는 여한경(呂漢卿)의 딸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 15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가 된 뒤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등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내고 황해도관찰사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1547년(명종 2) 우윤(右尹)으로 재직하다 원훈을 모함한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하여 삭탈관직 되었는데, 머지않아 여자임금이 정권을 잡고 이기(李芑) 등이 권력을 농단하니 나라가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리는 격이라는 내용의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이 일어났다.
이기 등에 의하여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송인수(宋麟壽)·이약해(李若海)·이언적(李彦迪)·노수신(盧守愼)·유희춘(柳希春)·백인걸(白麟傑) 등과 함께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단천(端川)·문의(文義) 등지로 이배되었다.
1553년에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갔다가 1557년에 다시 경주부윤에 기용되었으며, 그 뒤 안동부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