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할아버지는 증 공조참의 권정중(權正中)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윤 권백종(權伯宗)이며, 부인은 최용(崔鄘)의 딸이다.
경상도경력(慶尙道經歷)을 거쳐 지가산군사(知嘉山郡事)를 지내는 중, 1431년(세종 13) 딸이 세자궁 승휘(世子宮承徽: 훗날의 현덕왕후(顯德王后), 즉 문종의 비)로 간택되면서 사재감부정(司宰監副正)이 되었다. 그 뒤 세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지위가 높아지고 귀하여졌다.
1434년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를 거쳐 곧 통정대부에 승자되면서 첨지중추원사, 1435년 공조참의·호조참의를 지냈다. 1437년 가선대부에 승자하면서 중추원부사, 이어 공조참판과 동지돈녕부사를 지냈다. 1439년 다시 자헌대부에 초자(超資: 품계를 뛰어넘음)되면서 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40년 공조판서에 발탁, 곧 중추원사로 자리를 옮기고, 지돈녕부사를 거쳐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사후 1445년 원손의 외할아버지라 하여 좌의정에 추증되고, 1454년(단종 2) 다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에 추증되었다.
그러나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사건에 참여한 아들 권자신(權自愼)이 피해를 받아 주살되면서 관작을 추탈당하고 서인으로 격하되었다. 1699년(숙종 25) 중종대의 소릉(昭陵: 顯德王后의 능) 추복과 관련되어 관작이 복구되면서 신원되었고, 1718년 화산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경혜(景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