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돈자형(墩子形) 의자 위에 앉아 왼발은 내리고, 오른발은 왼쪽 다리 위에 걸쳤으며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명상에 잠긴 이른바 반가사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금동으로 만든 이러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최초의 예로 주목된다.
머리에는 왕관 형식의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관 띠를 이마 위의 관에 묶어 귀 좌우로 내려뜨렸다. 보관에는 탑 모양이나 일월(日月) 모양 또는 보주(寶珠)라고 불리는 장식이 세 가닥으로 올라갔으며, 중앙의 윗부분은 절단되었다. 이 부분들이 구슬이나 해와 달을 상징한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탑 모양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굴은 네모꼴에 가깝지만 눈과 뺨이 두드러져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눈을 가늘게 반쯤 뜬 모습을 하고 콧날을 오뚝하게 하고 광대뼈를 나오게 하면서 입가를 들어가게 하여 미소를 얼굴 가득히 나타내고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개성이 뚜렷한 한국적인 보살 얼굴을 성공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 얼굴형은 중국의 동위(東魏)나 서위(西魏)의 불상과 보살상에도 어느 정도 보인다. 하지만 네모꼴 얼굴에 광대뼈가 나오면서 입가를 들어가게 하여 얼굴에 가득하게 웃음 짓는 표정은 전형적인 우리 나라 사람의 특징 있는 모습이다. 즉, 이 상은 한국적 불상형을 최초로 조형시킨 보살상이라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상체는 당당하지만 쭉 곧고 늘씬한 모습이어서 중국 북위 말 이래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형태미를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늘씬하고 우아한 형태는 아래로 내린 왼쪽 다리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왼쪽 허벅지에 올려놓은 오른쪽 다리의 약간 치올린 무릎과 종아리가 이루는 곡선미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며, 굽힌 두 팔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늘씬한 팔이나 체구에 비해서 손이나 발은 상대적으로 큼직한 편이다. 그러나 뺨에 대고 있는 오른손은 길고 유연하며 곡선적이면서도 탄력이 있어 전체적인 형태미와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신체 전체의 부피감은 탄력 있고 매끄러우며 부드럽고도 율동적이어서 이 보살상의 우아한 모습과 썩 잘 어울린다.
천의(天衣)는 목 뒤로 돌아 양쪽 어깨를 덮어 일단 새 깃처럼 반전된 뒤 다시 가슴 쪽으로 흘러내려 왼쪽 다리에서 서로 교차된 다음 양 무릎을 지나 두 팔을 감아 내렸다. 천의 자락이 이루는 부드럽고도 율동적인 곡선미는 유연한 형태미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하체에 입은 치마[裳衣, 裙衣]는 다소 두툼하면서도 탄력 있게 나타내었으며, U자형의 옷주름 선이 능숙하게 처리되어 있다. 치마는 맞뚫림조각 모양의[透刻形] 돈자를 덮기 위해서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어 있다. 오른쪽 다리의 무릎 밑에 두꺼운 옷자락을 받친 점이나 옷자락이 흘러내려 돈자를 전체적으로 감싼 상현좌를 이룬 점 등에서 과장성을 충분히 볼 수 있다.
치맛자락은 앞면과 측면에 걸쳐 다리를 포함해서 네 가닥으로 흘러내렸다. 뒷면은 규칙적인 주름이 돈자덮개에서 한 번 물결 지다가 돈자에서는 다시 두 가닥의 자락을 이루고 있다. 이 옷자락들은 U자형을 이루며, 사이에 Ω자형의 주름을 이루었다.
허리띠는 배에서 한 번 나비매듭을 짓고, 양 허리에서 흘러내려 엉덩이 밑으로 들어간 띠는 다시 나와 매듭을 지은 뒤 흘러내리고 있다. 띠에는 구슬무늬와 격자무늬[格子文]를 정교하게 새겼다.
큼직한 왼쪽 발은 족좌(足座) 위에 듬직하게 올려놓았으며, 타원형의 발 대좌에는 연꽃을 곧추세운 힘찬 연꽃무늬를 뚜렷하게 부조하였다. 네모난 얼굴에 광대뼈를 나오게 하면서 만면한 미소를 띤 이 불상의 모습은 한국적인 얼굴을 성공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크게 주목된다.
늘씬한 체구, 어깨의 새 깃 같은 옷자락, X자형의 천의 자락, 규칙적인 옷주름 등은 중국 북위 양식을 계승한 동 · 서위 말 내지 북제(北齊) · 북주(北周) 초기 양식의 반가사유상과 매우 친연성(親緣性)이 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보살상은 한국적 보살상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6세기 중엽 내지 그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되며, 우리 나라 최초의 반가사유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 보살상의 국적을 신라로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고구려로 보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어서 좀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