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영(李岭). 자는 앙지(仰止). 아버지는 중종이고, 어머니는 남양군(南陽君) 홍경주(洪景舟)의 딸인 희빈(熙嬪)이며, 부인은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 정승휴(鄭承休)의 딸이다.
1520년(중종 15) 금원군에 예봉(例封)되었고, 1535년 문소전도제조(文昭殿都提調)를 겸하였다. 1552년(명종 7)에 연은전도제조(延恩殿都提調)가 되고, 이듬해 사옹원도제조(司饔院都提調)를 거쳐 1555년에는 종부시(宗簿寺)의 도제조를 각각 추가로 겸대하였고, 1557년(명종 12)에는 종친부까지도 아울러 관장하였다.
1559년 대간으로부터 "문정대비(文定大妃)의 언문교지를 위조한 승려 성청(性淸)의 일에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니 파직시켜야 한다."고 탄핵되었으나, 명종의 옹호로 계속 관직에 머물다가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