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150인씩으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50인씩 3개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근무하였다. 1750년(영조 26) 지방에서 징집하는 향기사제를 폐지하고, 경기사 중심의 직업군으로 개편한 것이다.
각 번에는 지휘관인 정3품의 기사장이 있었고, 그 위에는 총지휘관인 기사별장(騎士別將)이 있었다. 기사별장은 병사·수사를 역임한 2품이나 3품 당상관 중에서 임명되었다. 기사는 무과출신 가운데서 말을 바치고 일정한 시험에 통과한 자로 임용하였다.
1808년(순조 8)에는 무과출신과 한량을 함께 시험하여 장기근무자 3인을 선임하였으며, 연 2회 정기인사가 있을 때마다 금위영과 어영청의 별무사(別武士)를 그 자리에 승진시켰다.
이들은 왕의 행차시에 금위영에서 15인, 어영청에서 20인씩 차출되어 어가(御駕)를 호위하였으며, 매일밤 기사장 1인과 기사 25인이 8∼9필의 말을 준비하여 각기 본영(本營)에서 비상대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