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동사홀군(冬斯忽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기성으로 이름이 바뀌고 삭주(朔州)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 금성(金城)으로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금성과 회양(淮陽)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기에 이곳에서 창도역(昌道驛)을 거쳐 내금강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북한강의 지류인 맥판강(麥阪江) 유역에 있어 이곳의 물자를 기성창(岐城倉)에 모아 남쪽으로 운반하였다. 지금의 창도면 기성리 지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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