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배선회의 증손 배덕환(裵悳煥)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족증손(族曾孫) 배동환(裵東煥)의 발문이 있다.
4권 2책. 석인본.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2에 시 348수, 권3에 서(書) 46편, 잡저 8편, 권4에 지발(識跋) 3편, 애사 4편, 제문 13편, 부록으로 만사·제문·유사·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대부분 인생의 허무를 한탄하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포의(布衣)」는 저자의 고뇌와 갈등에 찬 인생관·세계관을 토로한 것으로, 고해(苦海)·진환(塵寰: 속세) 등의 시어를 사용하여 불교적인 사상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인다.
「산거즉사(山居卽事)」도 한가로운 곳에 사는 즐거움을 애써 표현했지만, 마음에 깊이 잠겨있는 좌절감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 내포되어 있다. 특히 「수미음(首尾吟)」에서는 단순한 문학적 동기에서가 아니라, 괴로운 회포를 달래려고 불가피하게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창랑가(滄浪歌)」는 5언으로 된 가행체(歌行體)로서 굴원(屈原)의 고사를 인용하여 현실도피적인 비애를 그리고 있다. 그밖에 「대설(大雪)」·「작약산(芍藥山)」 등의 영물(咏物)이 있으며, 「만김서산흥락(輓金西山興洛)」 등의 만시도 상당수 있다.
잡저의 「의상봉사(擬上封事)」는 1881년(고종 18) 영남유생들이 「척왜소(斥倭疏)」를 올릴 때 작성한 것으로 수신사(修信使)로 가는 김홍집(金弘集)을 맹렬히 통박하는 한편, 병인양요가 일어난 데에는 일본이 개입되었음을 주장하였고, 기독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고 하여 사교로 배척하였다.
또한 「재의상봉사(再擬上封事)」는 1884년 영남유생들이 복제(服制)를 개혁하는 것을 반대하는 글이다. 그밖에 치가(治家)의 요법을 기술한 「거가잡의(居家雜儀)」와 효자의 행적을 기록한 「효자최익진전(孝子崔翼軫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