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장(吉儀仗)’이라고도 한다. 의장은 길의장과 흉의장으로 구분되었다. 흉례 때만 사용되는 삽(翣 : 발인 때 상여 앞뒤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기구)·우보(羽葆 : 새의 깃으로 장식한 의식용 화려한 덮개)·만장(挽章)·방상씨(方相氏 : 무서운 모습으로 분장하고 악귀와 액을 쫓는 역할을 하는 사람) 등을 제외한 모든 의장은 길장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의 길장은 대략 150여 개나 되었다. 크게 나누어 청룡기(靑龍旗)와 백호기(白虎旗) 등의 기치류(旗幟類), 은작자(銀斫子)와 은월부(銀鉞斧) 등의 부월류, 양산(陽繖)과 일산(日傘) 등의 산류(傘類), 작선(雀扇)과 용선(龍扇) 등의 부채류, 현무당(玄武幢)과 주작당(朱雀幢) 등의 당류, 금횡과(金橫瓜)와 은립과(銀立瓜) 등의 과류, 금장도(金粧刀)와 은장도(銀粧刀) 등의 장도류, 금(金 : 징)과 고(鼓) 등의 악기류 등이 있었다. 이외에 대련(大輦)과 소련(小輦) 등의 가마류도 넓은 의미의 의장에 포함된다.
이러한 의장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유래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나,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뿐이다.
길장은 크고 작은 조회(朝會)나 경축 행사 때 궁궐의 뜰에 설치하였다. 또 왕·왕비·세자 등의 행차 때에 군사가 지참하고 대열을 만들었다. 길장의 일부는 또한 흉의장과 함께 흉례 때에도 사용되었다.
의장은 행사의 규모와 성격, 당사자의 신분에 따라 다르게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궁정 의식 때의 의장과 법가(法駕 : 왕의 행차시에 타는 수레)의 의장, 왕태자의 노부가 구별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궁정 행사의 경우 대장(大仗)·반장(半仗)·소장(小仗)의 구분이 있었고, 행차 때에는 대가(大駕)·법가·소가(小駕)의 노부로 차등이 있었다. 왕비·세자·세자빈의 의장도 지위에 따라 규정되어 있었다.
중국과 관계된 행사에는 황의장(黃儀仗)과 홍의장(紅儀仗) 등이 별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모든 의장도 황제의 의장으로 격상, 정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