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년 봄 2월에 진봉사(進奉使)로서 승려 9명과 함께 당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같은 해 7월 신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바다에 빠져 익사하였다.
한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김능유가 ‘왕자(王子)’라고 기록되었는데, 흥덕왕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이른바 ‘가왕자(假王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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