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년(숙종 6)에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가 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대복경(大僕卿)에 제수되었다. 다음 해에 다시 동북면병마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위위경(衛尉卿)이 되었다.
1104년에 북방 정세가 긴박하게 되자 동북면행영병마사(東北面行營兵馬使)로 부임하여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1106년(예종 1) 일시 여진과의 통교가 이루어져 내직으로 들어와 병부상서 겸 삼사사(兵部尙書兼三司使)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 윤관(尹瓘)의 여진정벌이 있게 되자 우군병마사 병부상서(右軍兵馬使兵部尙書)가 되어 군사 4만 3800명을 거느리고 선덕진(宣德鎭)을 출발, 광탄(廣灘) 등 32촌을 격파하여 적 290명을 죽이고 300여 명을 사로잡는 전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