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한우(翰于), 호는 경암(警庵) 또는 수산(秀山). 안동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김정락(金程洛),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유진(南有鎭)의 딸이다. 족숙(族叔)인 김시락(金時洛)과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903년 33세로 한성시에 응했으나 실패하여, 자신의 견문이 좁고 고루함을 내세워 사우들과 교유하는 데 더욱 성의를 기울여 학문의 영역을 넓혔다. 시재가 있어 15세부터 시를 잘 지었다. 성리학은 대체로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따라 자기 주장을 정립하려 하였다.
특히, 예설에 밝아 『가례』의 예에 따라 자기 가정을 기본으로 한 예를 만들었다. 산수에 취미가 있어 명승을 두루 탐승하였는데, 금강산을 유람하던 해에 죽었다. 저서로 『성학속도(聖學續圖)』·『학림통록(學林通錄)』·『문소가례(聞韶家禮)』 등이 있고, 『수산문집(秀山文集)』 9권 5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