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1634년에 진사 강설(姜渫)이 지역 유림들과 함께 대성전과 명륜당만을 중건하였고, 그의 아들 강여호가 선친의 뜻을 받들어서 건립비용을 널리 모금하여 동 · 서재(東西齋)와 묘문(廟門)을 완공하였다. 전학후묘(前學後廟) 건축형태이다.
지금의 건물은 그 당시 것으로서, 1970년 건물을 전면 해체, 보수할 때 이준(李埈)이 쓴 중수상량문과 함께 ‘숭정칠년갑술월중동초사일상량(崇禎七年甲戌月仲冬初四日上樑)’이라는 글이 확인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5칸의 대성전과 7칸의 명륜당, 동무(東廡)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 내에는 5성(五聖) ·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