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보형(寶衡), 호는 초정(草亭). 연풍(延豊) 출생. 아버지는 현감 김병욱(金炳昱)이다. 가학을 이어받아 유학을 공부하다가, 뒤에 서울에 올라가 수학(數學)을 공부하였다.
1887년(고종 24) 25세 때 광무국주사(礦務局主事)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가, 같은 해 친군우영문안(親軍右營文案)에 올라 주차영덕아의법 전권공사(駐箚英德俄義法全權公使)의 서기관으로 출국하였다가 1889년 귀국하였다.
그 뒤 승정원급분(承政院給分)·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고, 1894년 갑오경장 이후에는 외직으로 고창군수·장성군수 등을 거쳐 강원도순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나, 조정 권신들의 모함으로 1905년 파직되었다. 그뒤 목포·장성 등지에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김성규는 한때 나병을 앓다가 회복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1908년 조정에서 내린 정2품의 가자(加資: 정3품 이상의 품계를 올리는 일 또는 올린 품계)를 받지 않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는 『초정집(草亭集)』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