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왕의 장인으로 이찬(伊飡)의 관등까지 올랐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딸이 성덕왕의 아들 헌영(憲英 : 뒤의 경덕왕)과 혼인하였다는 기록 이외에는 달리 기록된 바가 없으나, 『속일본기(續日本紀)』에는 두 곳에 그의 이름이 보인다.
즉, 726년(성덕왕 25) 5월 일본에 온 신라사신 사찬(沙飡) 김조근(金造近) 혹은 김주훈(金奏勳)이 두달간의 체류 끝에 귀국할 때 일본정부가 지난해 6월 30일에 죽은 그를 애도하는 국서와 아울러 황시(黃絁)와 면(綿) 등을 부의로 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774년(혜공왕 10) 3월 일본에 온 신라사신 사찬 김삼현(金三玄)이 일본조정의 구주(九州)출장소인 후쿠오카(福岡)다자이부(大宰府)에서 일본관리들에게 옛날에 상재(上宰) 벼슬에 있던 김순정이 일본에 대하여 친선과 우호의 태도를 취한 것과 현재의 집정관인 김옹(金邕)이 그의 손자임을 말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여러 기록을 통하여 볼 때 그가 성덕왕 때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었으며, 또한 신라왕실과 혼인관계를 맺는 등 매우 유력한 가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