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본명은 김상복(金相福)이다.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문과를 중퇴하였고, 193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일본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단막극 「유민(流民)」을 출품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9년 안기석 이서 이화삼 등과 함께 친일연극을 표방한 극단 협동예술좌(協同藝術座)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연극 활동을 하였고, 협동예술좌의 창립 공연 작품 「동풍」을 집필하였다. 희곡 외에도 1937년 「동경 신극계(東京新劇界)의 개황(槪況)」, 1939년 「을묘년 극단회고(乙卯年劇團回顧)」 등 연극관계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1941년 3월 결성된 극작가동호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43년 2월 자신이 쓰고 연출한 가극 「춘향전」을 반도가극단(半島歌劇團)을 통해 공연하였고, 1943년 11월에는 부여신궁어조영(夫餘神宮御造營)의 문인봉사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본격적인 친일연극 창작에 나섰다. 발표된 작품으로는 1938년 「황금광상곡(黃金狂想曲)」, 1943년 「로나부인 행장기(行狀記)」, 1944년 「화전지대(火田地帶)」, 1945년 「산하우정(山河友情)」 등이 있다. 「로나부인 행장기」는 일본어로 창작된 작품이며,「산하우정」은 조선총독부 정보과에서 주관하고 조선연극문인협회가 국민총력조선연맹·매일신보사·경성일보사의 후원을 받아 주최한 제3회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해 단체상인 조선총독상과 작품상을 받았다.
해방 후 1945년 8월 조선연극건설본부(朝鮮演劇建設本部)를 조직하였으나 곧 탈퇴하였고, 같은 해 9월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을 결성해 서기를 맡았다. 이후 월북해 1949년 북한 최초의 극영화 「내 고향」의 시나리오를 썼다. 평양 연극영화대학의 교수를 지냈으며, 1994년 11월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