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은 잘 알 수 없으나, 810년(헌덕왕 2) 정월 파진찬(波珍飡)의 관등으로 집사부시중이 되었다가 이듬해 정월 신병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867년(경문왕 7)에 만들어진 경상북도 봉화취서사(鷲棲寺) 석탑의 사리합기(舍利盒記)에 의하면, 이 탑을 만드는 데 시주한 승려 언전(彦傳)의 어머니가 이찬(伊飡) 김양종의 둘째딸이라고 되어 있어, 만약 이 김양종을 시중을 지낸 김양종과 같은 사람으로 본다면 그는 시중을 역임한 뒤 이찬의 관등에까지 오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신라통일기에 전성을 구가한 호화주택인 이른바 금입택(金入宅) 가운데 ‘김양종택(金楊宗宅)’이 보이고 있는데, 이를 사람 이름에 붙인 택호(宅號)라고 본다면 시중을 지낸 김양종 바로 그 사람의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사실로 미루어볼 때 김양종은 신라 하대 진골귀족 가운데 매우 유력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