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1월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 때, 윤봉길이 사용한 폭탄제조작업에 참여하였다.
원래 이 폭탄은 한인애국단 단장인 김구(金九)의 부탁을 받은 김홍일(金弘壹)이 상해병공창장(上海兵工廠長) 송식마(宋式馬)와 교섭하여 제조한 일본군의 도시락 및 물통 모양의 폭탄이었는데, 재료가 된 일본군의 물통 및 도시락 10개를 구입하여 제공한 것이다.
1935년 중국 공군에 들어가 1941년까지 근무하면서 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경호원 및 비서로 근무하면서도 계속 대일비밀공작활동을 전개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