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김응룡(金應龍).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시현(時見), 호는 월담(月潭). 할아버지는 김관석(金關石)이고, 아버지는 선공감참봉 김담수(金聃壽)이며, 어머니는 조씨(曺氏)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585년(선조 1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박사를 거쳐, 1586년 예안현감이 되었다. 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량미 수송에 공이 커 왕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1607년 예조좌랑·병조좌랑을 지내고, 그 뒤 영월군수·풍기군수·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집안의 효를 이어받아 일생동안 『소학(小學)』에 정력을 기울였다. 상주의 낙암서원(洛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