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이경(而敬). 김희수(金熙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의숙(金義叔)이고, 아버지는 부사 김건(金鍵)이며, 어머니는 조숙관(趙叔瓘)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92년 호조정랑·헌납(獻納) 등을 역임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의 교섭에 많은 일을 담당하였다. 1595년 이후 상원(祥原)·성천(成川)·선천(宣川) 등의 지방관을 맡았을 때는 군사훈련을 잘 시켜 상을 받기도 하였으나, 방종한 생활로 처벌을 받았다.
1600년 비변사에 의하여 유장(儒將)으로 천거되었으며 다음 해 사예(司藝)·내자시정(內資寺正)에 임명되었다. 가주서(假注書)로 재직할 때에 기록이 서투르고 글씨가 졸렬하다는 이유로 선조의 명에 의하여 물러난 적이 있다.
1612년 장흥부사(長興府使) 재직시 호서시(湖西試)의 참시관이 되어 제출한 시험제목이 임해군(臨海君)의 옥사를 빗댄 것이라 하여 김시양(金時讓)·윤효선(尹孝先)과 함께 대북정권에 의하여 유배되어 유배지 회령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