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풍부원군(金淸風府院君) 묘역은 현종의 장인인 김우명과 덕은부부인(德恩府夫人) 송씨의 합장묘로, 묘역으로 진입하는 입구에 신도비가 있고, 숙종의 어필로 쓰인 묘비를 비롯한 상석, 망주석, 문인석, 장명등 등이 있다. 1976년 6월 17일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청풍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우명(金佑明, 1619~1675)의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주도한 잠곡(潛谷) 김육(金堉)의 아들이자 현종(顯宗)의 장인으로서 청풍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영돈녕부사를 지냈고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이었으나 정치적 사안에 따라 남인(南人)에 동조한 경우도 있었다.
그의 장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우명이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부원군에 대한 예우로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 묘지를 마련해 주었다. 조정에서 내려준 장지(葬地)로 장사지내기 위하여 한양에서 뱃길로 운구(運柩)하던 중, 현재의 묘소 앞에 이르러 배가 움직이지 않고 돌풍에 명정(銘旌)마저 산으로 날아갔다. 그래서 지사(地師)가 이를 찾으려고 산으로 가 보았더니 명정이 떨어진 곳이 바로 천하의 명당이었다. 그래서 즉시 하사지를 반납하고 이곳에 매장하였다고 전한다.
신도비는 이수(螭首)로 장식하였고, 비신은 가로 105.5㎝, 세로 204㎝, 두께 31㎝이다. 비문은 이민서(李敏敍)가 짓고, 글씨는 예서(隸書)로 유명한 윤심(尹深)이 썼으며, 전액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이 썼다. 묘역에는 묘소 앞에 숙종의 어필(御筆)인 묘비가 있고, 상석, 망주석과 문인석 각각 1쌍, 장명등 1기가 있다. 묘소 주변으로 곡장을 두른 것이 특징이다.
한편 1982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청풍부원군 상여가 춘천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는데, 1675년(숙종 2) 김우명의 장례 때에 사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