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정 ()

고대사
인물
통일신라의 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로, 시중, 국상, 병부령 겸 수성부령 등을 역임한 왕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주요 관직
시중|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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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의 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로, 시중, 국상, 병부령 겸 수성부령 등을 역임한 왕족.
개설

일명 ‘초노(草奴)’·‘헌정(獻貞)’라고도 한다. 원성왕의 왕자인 예영(禮英)의 아들이며, 희강왕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807년(애장왕 8) 1월부터 810년(헌덕왕 2) 1월까지 시중을 역임하였으며, 813년경에는 국상(國相), 병부령 겸 수성부령(兵部令兼修城府令)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뒤 819년 1월 병으로 보행이 불가능하였다고 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그 직후에 병으로 죽은 듯 하다. 837년(희강왕 2)에 희강왕에 의하여 ‘익성대왕(翼成大王)’으로 추봉되었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서는 왕실 및 진골귀족집단 내부에서 혈족관념의 분지화 경향이 전대에 비하여 더욱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원성왕계 내부에서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인겸계(仁謙系)·예영계(禮英系)의 대립이 있었고, 예영계내에서도 두 아들인 헌정과 균정(均貞) 양 계보의 알력이 있었다. 그래서 희강왕 이후의 왕위계승은 헌정계와 균정계의 연합과 대립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 원성왕계의 왕위교체」(오성, 『전해종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79)
「신라하대의 왕위계승과 정치과정」(이기동, 『역사학보』85, 1980)
「신라하대 균정계의 왕위계승과 김양」(윤병희, 『역사학보』96,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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