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초노(草奴)’·‘헌정(獻貞)’라고도 한다. 원성왕의 왕자인 예영(禮英)의 아들이며, 희강왕의 아버지이다.
807년(애장왕 8) 1월부터 810년(헌덕왕 2) 1월까지 시중을 역임하였으며, 813년경에는 국상(國相), 병부령 겸 수성부령(兵部令兼修城府令)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뒤 819년 1월 병으로 보행이 불가능하였다고 하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그 직후에 병으로 죽은 듯 하다. 837년(희강왕 2)에 희강왕에 의하여 ‘익성대왕(翼成大王)’으로 추봉되었다.
신라 하대에 들어와서는 왕실 및 진골귀족집단 내부에서 혈족관념의 분지화 경향이 전대에 비하여 더욱 촉진되었다.
그리하여 원성왕계 내부에서도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인겸계(仁謙系)·예영계(禮英系)의 대립이 있었고, 예영계내에서도 두 아들인 헌정과 균정(均貞) 양 계보의 알력이 있었다. 그래서 희강왕 이후의 왕위계승은 헌정계와 균정계의 연합과 대립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