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92면. 1959년 백자사에서 발행하였다. 서문이나 발문 없이 ‘우계(雨季)’·‘소묘집(素描集)’·‘꽃의 소묘(素描)’·‘릴케의 장(章)’의 4부로 나뉘어 23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작자의 『꽃의 소묘(素描)』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은 초기 시를 대표하는 두 시집이다. 이 두 시집은 1959년에 몇 달 차이를 두고 발간되었을 뿐 수록된 시들이 거의 서로 중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꽃의 소묘』에는 「우계」·「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그 이야기를……」 계열의 작품과, 「꽃」·「꽃의 소묘」·「꽃을 위한 서시(序詩)」로 이어지는 두 계열의 작품이 있다. 부다페스트 계열의 작품은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희랍과 부다페스트에서의 어린 소녀의 살해사건을 통해 우리 현실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이 시집의 주류를 이루는 꽃 연작을 통해 존재와 언어에 대한 탐구, 또는 존재에 대한 조명으로 바뀌어나간다. 그의 초기 대표시 중의 하나인 「꽃」에서 꽃은 인간의 명명 행위 이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명명 행위에 의해 비로소 꽃이라는 사물로 존재하게 된다. 이 점에서 이 시는 사물이 인간의 언어 행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현상학적 인식론의 세계를 보여준다. 김춘수는 이 시집을 통해 관념적인 인식이 아닌 사물의 본질 자체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경향은 1960년대 이후 순수시, 무의미 시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작자의 초기 시는 당대의 대부분의 서구 취향 시인들이 영미 모더니즘 계열에 속하는데 비해 상징주의 이론. 특히 릴케(Rilke, R.M.)의 초기시의 영향 아래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