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헌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박황의 시 · 소차 · 계사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이칭
이칭
유헌집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박황의 시 · 소차 · 계사 · 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08년(순조 8) 박황의 6대손 박종정(朴宗正)이 편집하였다. 권두에 1815년에 쓴 이만수(李晩秀)와 서영보(徐榮輔)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박종정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6권 3책. 필사본.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9수, 소차(疏箚) 43편, 권3에 계사(啓辭) 18편, 전(箋) 1편, 첩(帖) 1편, 제문 3편, 심중일기(瀋中日記)·신사서행록(辛巳西行錄)·심중기문(瀋中記聞), 권4∼6에 부록으로 연보·남한일기(南漢日記)·정원일기(政院日記)·춘방일기(春坊日記)·유사·가장·행장·신도비명·묘지명·어찰(御札)·어시(御詩)·교서(敎書)·증설(贈說)·증시(贈詩)·사제문(賜祭文)·제문·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애련(愛蓮)」은 연꽃의 아름다움과 청초함을 묘사한 것으로 표현 기교가 뛰어나다. 「김해적중작(金海謫中作)」은 1644년(인조 22) 심기원(沈器遠)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김해로 유배되었을 때 쓴 것으로,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 잘 나타나 있다.

소차에는 사직소와 여러 정책을 건의한 내용이 있다. 「논화사불가소(論和事不可疏)」는 1627년 정묘호란 때 직강(直講)으로서 올린 소이다. 주화론(主和論)을 배격하고 척화(斥和)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논리로 자기의 주장을 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심중일기」에는 1637년 1월 30일 왕세자를 모시고 남한산성 서문을 빠져나가 삼전도(三田渡)에 차려놓은 청영(淸營)의 축단처(築壇處)에 도착한 일과, 저녁때가 되어서야 도성(都城)으로 인조가 환궁하고, 자신은 왕세자를 모시고 탄천변(炭川邊)의 구왕진영(九王陣營)에 머물게 된 일, 그 뒤 왕세자를 호종(扈從)해 심양에 가서 있었던 일 등이 날짜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신사서행록」은 1641년 다시 심양에 불려가 소현세자(昭顯世子)를 호종하며 겪은 일들을 적은 일기이다. 「남한일기」는 1636년 12월 16일부터의 일기로, 병자호란 중에 남한산성에서의 일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 밖에도 1624년의 「정원일기」, 1638년의 「춘방일기」, 심양에서 지낼 때 견문한 내용을 적은 「심중기문」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저자가 병자호란을 전후해 주요 관직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문집은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집필자
이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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