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행차시에 어가(御駕)의 앞뒤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779년(정조 3)에 훈련도감의 우전초마병(右前哨馬兵)을 차출하여 난후별대라 부르고, 왕이 성밖을 나갈 때 절반은 초관(哨官)이 인솔하여 어가의 앞에서 호위하고, 절반은 별장(別將)이 인솔하여 어가의 뒤에서 호위하게 하였다.
1807년(순조 7)에 마병 1초(哨 : 120여 인)를 증설하여 난후별대를 보강하였고, 전립(戰笠)에 황색 전우(轉羽: 새의 깃)를 사용하게 하였다. 난후별대의 기(旗)는 황색 바탕에 황색 가장자리를 붙였고, 크기는 사방 2척 5촌, 깃대는 1장 5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