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부대의 후미를 경비하는 부대였으나, 실제로는 도제조(都提調) 등 고관들의 호위가 주임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100인의 군사가 소속되었는데, 그중 30인은 도제조의 수행원 격인 등롱군(燈籠軍)이었고 4인은 부사령관 격인 중군(中軍)의 수행원, 9인은 짐꾼인 복마군(卜馬軍)이었다.
난후초의 책임자를 난후초관(欄後哨官)이라 하여 지구관(知彀官)의 체아직(遞兒職)에서 장기근무한 자를 매 도목(都目)마다 1인씩 등용하였다. 난후초는 또 총융청(摠戎廳)의 중영(中營)에 1초가 설치되어 있었고, 1747년(영조 23)에는 평안도병영에 난후사(欄後士)라는 특수부대를 설치하였는데, 둔전(屯田)에 의하여 운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