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때 김상빈(金尙賓)에 의하여 개경에 설립되었다. 김상빈은 국자좨주(國子祭酒)를 끝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남산 아래에 사숙(私塾)을 열어 교육에 전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개설한 사학은 지명을 따서 남산도라 하였다. 그 뒤 12공도의 하나로서 고려 교육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으며, 1391년(공양왕 3) 사학교육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12공도와 함께 소멸되었다. →십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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