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경림(景霖), 호는 이요당(二樂堂). 할아버지는 삭령군수 남변이고, 아버지는 참판 남세건(世健)이며, 어머니는 이윤식(李允湜)의 딸이다.
진사로 1535년(중종 3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겸 저작을 역임하고, 1538년 봉상시직장을 거쳐 경상도도사로 부임하였다.
1542년 사헌부지평으로 재직 중, 수군(水軍)의 고역참상과 왜인이 왕래할 때의 수운(輸運)의 폐단을 지적하였고, 이듬해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홍문관부교리와 시강관을 거쳐 이듬해 사헌부집의에 올랐다.
1548년 홍문관부응교, 이듬해 홍문관응교와 전한을 역임한 뒤, 강원도경차관(江原道敬差官)으로 나아가 양구(楊口)의 전야(田野) 황폐와 인구유산(人口流散) 등의 실상을 보고하였다. 1550년 예빈시정이 되고, 지제교 겸 승문원참교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성균관사성을 거쳐 1552년 공조참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