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중앙부에는 원좌(圓座)를 중심으로 간엽(間葉)이 표현된 6엽의 보상화문(寶相華文)을 가는 선으로 도드라지게 새겼다. 다시 그 둘레에 굵은 두 가닥의 띠를 둘러 외구(外區)와 구분하였다. 중앙의 원좌에는 가는 선이 촘촘히 둘려서 동심원모양의 무늬를 이루었으나 별다른 무늬를 장식하지 않았다.
다른 금고는 통상적으로 자방(子房)을 표현하고 그 속에 연자(蓮子)가 7∼9개씩 들어 있는 모양을 하고 있으나, 이 금고에서는 한가운데에 약간 돌출된 흔적이 보이므로 본래 커다란 연자 1개를 표현하였던 것이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마멸된 것으로 생각된다.
외구에는 넓은 공간의 네 곳에 보운문(寶雲文)을 역시 가느다란 선으로 도드라지게 새겨넣었는데 오른쪽을 향하여 흐르는 듯 표현되었다. 단조롭고 소박한 표면 의장은 통일신라시대의 여운을 보여 주며, 보상화문이나 구름의 표현 등에서도 통일신라의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측면에는 이중의 도드라진 대선(帶線)을 두르고, 이 넓은 띠 위에 3개의 고리를 붙였다. 그러나 현재는 2개의 고리만 남아 있는데, 본래 여의두(如意頭)모양이던 것이 부식되어 거의 반원모양을 보이고 있다.
또한 측면에는 1행으로 ‘大安七年辛未五月日棟梁僧貞妙次知造納金仁寺鈑子一口重二十斤印(대안7년신미5월일동량승정묘차지조납금인사반자1구중20근인)’이라는 명문(銘文) 30자가 오목새김되어 있어서 이 금고의 제작 연대(1091)와 작가, 제작한 사찰, 무게 등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