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露梁津)·노도진(露渡津)·노량진도(鷺梁津渡)·노들나루라고도 불리었다. 이 나루는 서울과 과천·시흥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하였는데, 조선시대 9대 간선로 중에서 충청도와 전라도 방면으로 향하는 제6·7·8호 간선로의 길목이었다.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였던 나루터여서 사람들의 이용이 많았으며, 도승(渡丞)이 한 사람 배치되어 관리를 맡았다. 나루 남쪽 언덕에는 노량원(鷺梁院)이 위치하여 있었으며, 세금을 거두는 관내는 과천의 신촌리(新村里)·사촌리(沙村里)·곽계(槨契)·형제정계(兄弟井契)·마포강(麻浦江)이었다. 이 나루에 속하였던 진선(津船)은 10척이었고, 관선(官船)은 15척이었다.
철교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에 설치된 노량진역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의 구실을 수행하였고, 철교가 세워진 뒤에는 경부선 및 전철 제1호선 등이 지나고 있다. 또한, 한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한강인도교가 설치되어 1번국도가 지나고 있다. 최근 이 인도교가 확장되었고, 주변에 강변북로·올림픽대로 등이 지나 교통요지로서의 구실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조선시대 과천현(果川縣)에 속하였고, 1895년 인천부(仁川府) 과천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다.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에 속하였으며, 영등포구역소(永登浦區役所)를 거쳐 1946년 영등포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3년 관악구가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였다가, 1980년 관악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동작구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