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명중(明仲), 호는 호정(壺亭).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 노주상(魯周相)의 장남이다. 손자 노진룡(魯鎭龍)도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888년부터 1893년까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 영친왕 진료 후 6품 승훈랑(承訓郞)에서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1906년 3월 최익현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모의한 뒤 군자금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무성서원(武城書院)회의 후 의진이 결성되자, 그 휘하 의관으로 활약하면서 곡성(谷城)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나 패배하였다. 그 해 대마도로 가서 유배 중 단식으로 병을 얻은 최익현을 치료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