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1715년(숙종 41) 노산(蘆山)에 있을 때 쓴 것이다.
『노산취필』 권두에는 자서(自序)가 있어 이 책을 쓰게 된 연유를 밝혔다. 집필한 날짜도 을미맹추(乙未孟秋)로 명기하였다. 이 책은 단권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50항목으로 나누어졌다. 특별히 항목명칭을 붙이지는 않고 각기 구별만 되어 있다.
『노산취필』의 내용은 거의 역사적 쟁점이나 민족의 수난사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육신에 대한 상소문 내용과 조의제문(弔義帝文)에 관한 것으로부터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건국, 옛 성현의 지침, 임진왜란 당시의 산릉(山陵)의 참화현상, 기묘·정축의 사화, 계해반정, 이이첨(李爾瞻)의 사건, 폐비사건의 전말, 계축옥사, 임진왜란 당시 임금의 피란의 전말, 병자호란,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지방에서 관군의 일부가 왜병에 투항한 것을 정문부(鄭文孚)가 토평한 이야기 등이다. 대부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사색당파와 잦은 옥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산취필』 중에서 특히 제22항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내용에 항복하기 전에 남한산성에서 군신이 함께 죽을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항복한 사실을 빠뜨렸다는 지적은 당시의 역사가 각 당파의 이해로 악용된 한 예가 될 것이다.
『노산취필』 제26항에서 효종이 죽기 두 달 전에 송시열(宋時烈)과 나눈 단독대화에서, 당시의 수많은 포로문제와 국방의 나약함으로 압제를 받게 된 사정을 소상히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제42항에는 노론과 소론의 나누어짐과 그 의미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정쟁(政爭)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작자의 체험이므로 이때의 역사적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산취필』은 전체적으로 보면 김춘택이 비록 노론의 입장에 서 있으나 특정한 사항에 대한 논평은 엄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립도서관도서에 있다.